90년대 후반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상당수의 작품들이 개인용 컴퓨터로 제작된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미디어의 대중화에 힘입은 것이면서도, 동시에 독립애니메이션의 필름 제작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에서도 비롯된다.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독립애니메이션은 대부분 VHS, Betacam, 6mm DV 등과 같은 비디오 포맷에 레코딩되고 있으며, 따라서 컴퓨터 안에서의 그래픽 작업 사이즈도 비디오 포맷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최근들어 몇몇 독립애니메이터들을 통해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필름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바, 이 부분에 대한 일정한 개념 정리와 테크닉 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필름 작업은 단순한 포맷상의 변화가 아니라 독립애니메이션의 실험정신, 다양성의 경쟁력, 상영 방식의 확대 등 많은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독립적인 방식에 의한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필름 제작에 관한 기초적인 문제들과 테크닉을 다루면서,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진일보에 작은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Digital to DV

     국내 독립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특징은 대부분 디지털 제작이라는 점과, 따라서 최종적인 포맷이 대부분 비디오라는 것이 다. 이 부분은 90년대 중반이라는 특정 시기에는 대단히 유리한 지점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다지 특별한 것도 아니고 어떤 부분에서는 심지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국내 독립애니메이션의 제작이 대부분 디지털이라는 점은 필름으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실과, 디지털이 독립적인 제작환경을 구축하는데 일단은 용이하다는 점을 반영한다. 심지어 필름 포맷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상업 프로덕션의 애니메이터도 자신의 독립작품을 제작하려면 디지털 방식을 취해야 할 정도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서 디지털 테크닉이 실질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상업애니메이션과 독립 애니메이션의 그것이 시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서 상업애니메이션과 독립애니메이션의 디지털 테크닉 수준 역시 그러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 97년 까지는 비디오 포맷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의 디지털 무비 파일을 VHS나 Betacam에 레코딩하였는데, VHS 화질의 비디오 레코딩은 작업실에서 가능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Betacam 레코딩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Betacam 포맷은 대개 국내외 영화제나 방송용 자료 차원에서 필요한데, Betacam 데크가 워낙 고가 장비 인데다가 Betacam 데크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비디오 카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의 장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지털 방식으로 독립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감독들 중에 Betacam 레코딩 장비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정도가 되려면 필연적으로 상업일을 해야 뭔가가 유지된다. 결국은 디지털 무비 파일을 들고 Betacam 레코딩할 수 있는 상업 프로덕션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98년에 들어서 필자를 포함한 몇몇 독립애니메이터들이 6미리 DV 레코딩 방식을 시도하였다. 가격대 성능비의 면에서 그것은 필연적인 실험이었고, 수십 차례의 테스트를 통해 그 경제성과 효율성을 확인하였다. 지금은 독립작품의 레코딩 뿐만이 아니라 워크샵 작품 및 상업물에도 DV 레코딩이 활용되게 되었다.
      독립적인 방식으로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Betacam이나 D1 등에 레코딩하는 것이 대단히 힘들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DV 레코딩으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DV는 독립 애니메이션 뿐만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비디오 포맷이기 때문에 방송용 화질로의 레코딩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이후의 문제를 폭넓게 모색할 수 있게 된다.
      테스트 결과 DV 포맷의 디지털 무비 파일의 용량은 5분당 1GB 정도를 차지하고, 30분 분량의 중편애니메이션이라면 6GB가 된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고속 하드디스크를 필요로 하는데, 영상 작업용 고속 하드디스크의 가격이 2~3년 전에 비해 매우 저렴해졌고, 새로운 방식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아니라 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다음에 언급될 바와 같이 'Digital to DV' 그 다음 이다. DV를 필름으로 전환하는 문제나, DV 포맷 자체가 영화제나 상영 및 배급의 한 형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인디포럼>에 왜 DV가 공식 포맷에서 빠져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DV to Film

     얼마전 극장개봉한 영화 <셀레브레이션>은 놀랍게도 6미리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라스 폰 트리에와 함께 '도그마 95'그룹의 대표적인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만든 영화 <셀레브레이션>은 칸느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6미리 DV로 촬영한 후 디지베타로 전환하여 비선형 디지털 편집을 거쳐 최종적으로 35미리 필름에 담겨져 극장 상영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쁜 영화>에서도 35미리로 전환된 비디오 영상은 대부분 6미리 DV로 촬영되었고, 이는 Betacam으로 전환된 후 매킨토시에서 아비드를 통해 편집되었다.
      흔히 '키네코'라고 불리우는 'Video to Film'은 독립영화진영의 주요한 작업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다룬 다큐멘터리 <파나마 사기극>(93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수상)은 그 좋은 사례이다. 미국의 여성독립영화작가 바바라 트렌트가 감독을 맡고 EP(Empowerment Project)에서 배급한 이 영화는 비디오로 촬영된 후 16미리와 35미리로 전환되어 미국 전역에서 상영되었다.
      Sony의 VX-1000 이후 비디오로 작업되는 독립영화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VHS, S-VHS, 8mm, Hi-8mm 등의 화질을 뛰어 넘고 방송용 Betacam에 뒤지지 않는 DV가 독립영화의 비디오 작업 에 주요한 포맷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리고 DV는 독립영화 진영 뿐만이 아니라 케이블과 공중파 TV에서도 현재 널리 사용되 고 있다.
      특히 DV는 비선형 디지털 편집이 용이한데, DV 이전의 비디오 포맷 - VHS, Betacam 등과 같은 아날로그 비디오 - 의 비선형 편집 시스템 구성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와의 입출력은 사운드를 포함하여 FireWire라는 단일한 라인으로 '통합'되었다. DV로 촬영된 영상의 편집은 6미리 데크, Betacam 전환, 디지털 편집 등 다양한 방식을 취할 수 있다.
      86년 전문 포스트 프로덕션용으로 최초의 DV인 D1이 개발되 었을때 일반인이나 독립영화진영에서 DV를 접하기란 거의 불가능 했지만, 6미리 타입의 DV가 등장한 이후 DV는 비로서 '대중'의 것이 되면서 대안적 영상미디어의 테크닉이 한층 강화되었다.
      우리 독립영화에서 비디오 작업은 대부분 DV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DV를 통한 독립영화 작업은 다큐멘터리에서 시작 되어, 애니메이션에서 레코딩 포맷으로 받아 들였고, 극영화와 실험영화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독립영화진영의 DV는 크게 두가지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DV 편집의 디지털화이고, 또 하나는 DV의 필름 전환이다. 독립영화진영의 DV 편집은 대개 6미리 데크를 통한 것이거나 Betacam 전환 편집인데, 아마도 이는 디지털 비선형 편집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탓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미 DV가 독립영화의 여러 장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면 'DV to Film'에 관한 연구나 기술력 확보는 좀더 '조직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독립영화의 입장에서 비디오로 제작된 영화를 필름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면 DV로 제작하여 Film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Digital to Film

     'Digital to Film' 즉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그래픽을 직접 필름에 레코딩하는 방식은 분명 'Video to Film' 보다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러한 작업은 35미리 상업영화에서도 특수효과나 CG 합성 부분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고가의 전문장비와 운용기술을 필요로 한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35미리 필름에 레코딩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35미리 필름의 해상도와 같은 그래픽 사이즈로 컴퓨터 상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야 하는데, 이는 비디오 레코딩을 위한 그래픽 사이즈인 640 x 480(픽셀) 보다 훨씬 큰 2048 x 1536(픽셀)에 해당하며, 이때 한 프레임의 용량은 무려 10MB 내외가 된다.
      미국식 와이드 스크린(1.85:1)으로 비례를 바꾸어 용량을 줄여도 한 프레임은 6.5MB를 차지한다. <토이 스토리>나 <개미>같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한 프레임은 이 정도의 크기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토이 스토리>의 한 프레임 렌더링 시간은 평균 8시간이었고, 1주일당 평균 3.5분 분량을 렌더링 했다고 한다. 그것도 수십대의 중형급 컴퓨터를 사용하여!
      물론 개인용 컴퓨터에서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제작할 때 주로 사용되는 프리미어나 애프터 이펙트는 35미리 포맷의 동영상 편집을 지원한다. 특히 애프터 이펙트 4.0버전은 6미리 DV, D1, HDTV, 35미리 필름 포맷 이외에도 컴퓨터 그래픽의 필름 레코딩에 사용되는 장비인 Cineon 포맷으로 동영상 편집을 할 수 있도록 전문화되어 있다.
      문제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35미리 포맷의 그래픽 작업을 과연 수월하게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실제로 35미리 필름 레코딩을 전제로 애니메이션의 그래픽 작업을 할 때 원래 사이즈인 2048 x 1536(픽셀) 보다 조금 작게 작업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사이즈는 레코딩을 위한 동영상의 가로 x 세로 사이즈이며, 따라서 여기에 사용되는 소스 즉 동화나 배경은 대개 이보다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관점은 'Video to Film' 보다 'Digital to Film'이 더 우월한 테크닉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다른 종류의 테크닉일뿐이며, 중요한 것은 작품의 성격과 취지 그리고 배급형태에 관한 문제라고 여겨진다. 독립애니메이션에서 'Digital to Film'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 아니라,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것은 곧 작품에 상업주의가 개입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독립영화로서의 개념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Digital to Film'은 디지털 방식으로 독립애니메이션 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제작방식인 것 만큼은 확실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소홀히 취급되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밖의 방법들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필름에 담은 방법은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컴퓨터 모니터를 직접 필름 카메라로 콤마 촬영하는 방법으로, 컴퓨터 모니터와 필름 카메라의 프레임 비율에 유의하고 일정한 테스트를 거치면 대단히 현실적인 테크닉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언젠가 서울단편영화제에 선보인 어느 작품은 실사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용한 영화를 컴퓨터에서 편집한 후 비디오 프로젝터로 영사하여 그것을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적도 있다.
      또 조금은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각 프레임을 프린트하여 그것을 필름 카메라로 콤마 촬영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시도된 바 있다. 하지만 모니터 상의 이미지가 프린트될 때는 빛의 3원색에 의한 컬러가 색의 3원색과 검정색의 합성으로 전환되면서 색상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인디펜던트의 개념으로 애니메이션이 시작된 것은 90년대 중반의 일이었고, 이 과정에서 디지털 테크닉은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디지털이었다는 이유에서 쉽게 상업주의가 침투했고, 인디펜던트로서의 정체성은 조금 공허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독립애니메이터들은 디지털로부터 무장을 시작하고 있고, 몇몇 1세대 독립애니메이터들은 장편과 필름으로의 또다른 험난한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필름 제작이 보다 구체적으로 시도되고, 그것이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을 강화하는 공유할 수 있는 테크닉으로 자리잡고 연구되기를 감히 기대해본다.

1999. 5 / 전승일
(인디포럼 99 애니메이션부문 세미나 발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