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 2006년도 사업으로 구성된 공공미술위원회는 사회양극화 해소에 기여하고, 주민 참여에 기초한 공공미술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2006년 한 해 동안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 - Art in City(www.artincity.org)>를 진행하고 있는데, 예술과 공공성의 관계에 대한 개념 정리를 위해 공공미술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책자 <공공미술이 도시를 바꾼다> 가운데 일부를 인용해본다.

“공공미술은 현대의 공동체 예술(Community Art)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공공미술이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조형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가치란 사람들의 모듬살이에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가치이다. 그러므로 공공미술은 그러한 가치를 위해 봉사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성이란 단순히 사회의 집단적인 성격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대 시민사회에서 형성된 자율적인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국가 권력과 개인생활 사이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관심을 통해 만들어낸 집합적인 공유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공공미술은 권력의 초상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대의 예술이어야 한다.

공공미술은 빈부나 학력 혹은 성별과 연령의 차이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감상 혹은 참여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즉 공공미술의 경우, 예술가보다 관객 혹은 대중을 중심에 두고 예술세계와 현실생활의 접목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또한 확장된 문화 개념을 적용한다는 측면에서 ‘문화민주주의’ 개념의 정책 추구와 맞닿아 있다.

한편 영상이나 뉴미디어는 아직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방송 분야에서 퍼블릭 액세스 운동이나 지역방송운동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영상과 뉴미디어는 공공적인 활용의 가능성이 매우 큰 분야이지만 대부분 상업적인 영역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과연 이러한 매체를 공공적인 영역으로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과제이다.“

국가 콘텐츠 두 가지 사례

2002년에 시작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콘텐츠 사업의 연속선 상에서 현재 인권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다. 여기서 잠시 통계를 보자.

영화명 : 별별 이야기
제작사 : 국가인권위원회
개봉일 : 2005년 9월 23일
전국관객수 : 7,232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005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요즘 관객 스코어 1천명을 넘기는 독립장편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독립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른 차원에서 5억이 넘는 국가자금을 들여 제작한 ‘국가영화’의 성과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왜 ‘국가영화’가 굳이 상업영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극장에서 개봉하고 결국 흥행에는 실패한 것일까?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확보한 마케팅비 9천만원을 활용하여 인권단체나 미디어단체와 함께 전국 초ㆍ중등학교 혹은 지자체 문화센터 및 도서관 등에서 공공 상영회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상당히 다른 지점의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최근 정부는 국가기록사진관(http://photo.allim.go.kr)과 국가기록영상관(http://film.ktv.go.kr)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 역사와 정부 활동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사진과 동영상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국가기록사진관의 경우 책으로 출간되어 있는 ‘대한민국 정부기록 사진집’(전9권) 전체를 볼 수 있으며, 시대와 유형별 목록을 통해 매우 상세하게 정부의 각종 활동 및 일반 사회문화상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국가기록영상관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대한뉴스, 문화영화, 대통령기록영상, 기록음성 등 10만분 분량의 디지털화된 각종 국가 콘텐츠가 올려져 있다.

하지만 국가기록사진관과 국가기록영상관 어디에서도 지난 시기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을 향해 저지른 부도덕하고 반인간적인 국가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영상은 찾아볼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나마 알려져 있는 한국전쟁전후 국군과 경찰이 저지른 수십만의 민간인학살에 대한 사진자료는 대부분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 있으며, 최근 이곳에 보관된 사진들을 스캔하여 한국전쟁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2>가 출간되었다.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2>에 수록된 사진들은 출간되기 전 오마이뉴스에 30회에 걸쳐 온라인 연재된 바 있다.

위 두 가지 사례는 문화ㆍ예술이 공공성과 만나는 지점에서 국가가 주도권을 가졌을 때 나타나는 오류와 한계를 보여준다. 공공성 혹은 공공영역은 국가의 것이 아니라,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참여와 연대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정치적ㆍ사회적ㆍ문화적 과정으로서의 영역이며, 예술의 공공적 실천은 여기에 결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옴니버스 인권영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 www.newscham.net/Furnaces blog.jinbo.net/crazykorea
한미FTA 저지 독립영화 실천단 : www.indieaction.net

대추리, 새만금, 줄기세포, 화상경마, 카지노, 비정규직, 양심적 병역거부, 사학법, APEC, WTO, 여성농민, 한미FTA, 전략적 유연성..... ‘2006년 미쳐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영상 보고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2005년 12월 독립영화 진영에서 제안되어 16명의 독립영화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약 6개월의 제작기간에 걸쳐 만들진 단편 옴니버스 형식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후 그동안 전국 순회 상영회, 인터넷 온라인 상영 및 링크 공유, 동영상 무료 다운로드 등 ‘공격적 상영운동’을 전개한 프로젝트이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대한민국에서 과거에 벌어졌던 혹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들의 단면들을 모으고 재조합하여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통렬하게 기록하고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 세계화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지난 4월부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한미FTA 저지 독립영화 실천단’은 한미FTA의 본질과 반대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영화 제작 및 지역 상영회 조직, 국내외 작품 수급 및 라이브러리 배급, 미디어 제작 워크샵, 사회단체와의 연대활동, 한미FTA 반대투쟁 영상기록, 방송 퍼블릭 액세스 등 다양한 실천을 진행하고 있는 독립영화 진영의 행동주의 프로젝트이다.

독립영화 진영의 위 두 가지 프로젝트는 영상 미디어가 어떻게 공공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실천하는가에 대한 매우 의미있는 사례이다. 예술의 공공적 실천은 주제나 내용의 측면에서 공공적 이슈를 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공공영역 속에서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영화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를 분단상황의 극복이라는 공동체적 관심사에 예술로서 개입하고 활동한 영상 미디어의 공공적 실천 사례로 이해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독립애니메이션 여명기의 실천 <우리는 만나야 한다>

1991년에 제작된 초기 독립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소년과 군인의 이야기를 통해 민간인 학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단면을 표현한 작품으로 평화와 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시 전국적 대학생협의기구인 전대협을 통해 제작ㆍ배급되었으며, 구전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각색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장면을 통해 반외세 민족자주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번 제2회 인디애니페스티벌 특별 상영을 위해 VHS 테입의 영상과 사운드가 새롭게 보정 작업되었다.

* 이 작품의 원작은 권정생 선생의 단편동화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로 2007년 보리출판사 ‘평화 발자국’ 시리즈로 재출간되었다.

공공애니메이션의 가능성

이번 제2회 인디애니페스티벌 초청섹션 ‘공공애니’ 부문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국내 애니메이션들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공공애니메이션의 매우 부분적인 가능성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오히려 이번에 구성된 ‘공공애니’ 섹션은 독립애니메이션이 공공성의 문제를 의제로 받아들이고, 창작과 사회적 실천활동에서 조종중심의 하나로 삼아나갈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공공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찾을 것인가? 변화된 조건과 상황을 보자. 영화진흥위원회는 독립ㆍ공공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중단했고, 현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단편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그리고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독립단편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독립ㆍ공공애니메이션에 대한 이러한 지원사업들은 정책에 따라 또다시 변화할 것이다.

투박한 차원의 사견임을 전제로 말하자면, 현재 국가에서 콘텐츠 산업화 전략으로서의 장ㆍ단편 애니메이션을 지원하고 있는 사업과는 별개로 구분되어 독립ㆍ공공애니메이션 분야는 다른 장르의 문화ㆍ예술과 함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사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경우 기존 독립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의 비중이 제작에 맞춰져 있던 것에서 벗어나 소통ㆍ상영ㆍ배급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본다. 간혹 지역 문화재단 지원선정 사업 가운데 애니메이션 프로젝트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현재 공식적으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분야에서 독립ㆍ공공애니메이션은 제외되어 있으며, 그러한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독립ㆍ공공애니메이션 분야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육성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특별히 이견이 제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분야를 제대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변화 방향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독립애니메이션 진영 내에서는 여기에 필요한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고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지원제도는 어디까지나 예술의 공공적 실천활동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하나의 조건이고 축이다. 또 다른 중요한 축은 창작자 즉, 주체의 문제이다. 독립적이고 공공적인 개념의 예술활동을 하건 콘텐츠 산업화 전략으로 회사를 만들건 아니면 병행하건 이는 전적으로 창작자가 판단하고 행동할 문제이다. 애니메이션의 공공적 실천활동을 하고자 하는 주체가 없다면 제도도 무의미한 것이다.

독립 애니메이터가 영화제나 작업실에만 있지 않고, 정치적ㆍ사회적ㆍ문화적 이슈가 놓여 있는 공공영역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만큼 독립애니메이션의 공공적 예술로서의 가능성은 다양하고 폭넓게 열릴 것이다. 일례로 전국 각지의 문화예술회관이나 시민회관의 프로그램 구성을 한번 살펴보라! 독립애니메이션이 갈 곳은 너무나 많다.

독립애니메이션의 공공적 예술로서의 가능성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 안에는 사회운동과 함께 하는 투쟁도 있을 것이고, 오락과 유희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안에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창작의 고통도 있겠지만,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에 놓인 ‘신비의 벽’을 허물고 애니메이션을 즐겁고 생동감 넘치는 커뮤니케이션과 놀이문화로 하나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상의 대안미디어 또한 애니메이션의 공공성을 모색해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21세기는 공공성의 시대’라고 얘기한다. 독립애니메이션 진영이 공공성을 의제로 받아들이고
사회적 실천활동의 조종중심으로 삼는 것은 이제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와 연대로 함께 공동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필연의 차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2006. 10 / 인디애니페스티벌 세미나 발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