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미디어 시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표주자로 불리우는 애니메이션 !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의 개념이나 그 예술적 특성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한국적 편견과 오해와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그 결과 애니메이션 영화의 발전(산업적인 측면에서조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술성의 확보'라는 측면을 종종 간과하는 풍토를 낳기도 하였다.

1960년 창립된 국제애니메이션영화협회(ASIFA)는 '애니메이션 예술은 라이브액션(실사) 영화의 제작 방법과 구별되는 별도의 다른 여러 가지 기술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움직이는 이미지로 창조된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애니메이션 영화는 사물의 실제 움직임 자체를 촬영·기록하는 방식이 아닌 방법 - frame by frame -을 통해 인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모든 종류의 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애니메이션 영화는 만화뿐만이 아니라 드로잉, 페인팅,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점토, 인형, 모래, 컴퓨터 그래픽, 각종 오브제 등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형식의 이미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은 픽실레이션이나 로토스코핑 기법과 같이 라이브액션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리·조작해서 만들기도 한다. 전주영화제에서도 소개되었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웨이킹 라이프>(2000)나 랄프 벅시 감독의 <반지의 제왕>(1978)은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영화에 대하여 언급할 때 여전히 라이브액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애니메이션은 그저 영화의 한 장르 - 아동용 내지는 만화영화 - 라고 여기는 것일까? 애니메이션은 영화보다 뒤늦게 출발하였으며, 영화의 한 장르라는 오해와 달리 역사적으로 볼 때 활동사진으로서의 영화를 탄생시킨 원동력은 다름 아닌 애니메이션이었으며, 애니메이션은 라이브액션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또 다른 대표적인 한 방법이다. 애니메이션과 라이브액션은 영화를 만드는 서로 다른 기본적인 두 가지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멜로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도 있고, 라이브액션으로 만들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액션영화', 'SF영화', '어드벤처영화', '정치영화'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창조된 움직임'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비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서 라이브액션 영화와는 다른 특유의 독특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까?

아트 애니메이션의 세계적인 산실인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NFBC)에 1941년 애니메이션 파트를 창설하고, 80년대 후반까지 끊임없이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했던 노만 맥라렌은 일찍이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의 예술(art of drawings that move)'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의 예술(art of movements that are drawn)'이다. 따라서 각 프레임에서 보이는 것보다 각 프레임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이는 라이브액션 영화의 구조를 설명할 때 흔히 'shot by shot'라는 개념을 얘기하는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애니메이션 영화의 비밀은 움직이지 않는 스틸 이미지 사이의 조작, 즉 'frame by frame' 속에 숨겨져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 현관에 걸려 있는 노만 맥라렌의 실제 X-Ray 사진. 소속 작가들이 자유분방하게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다.

라이브액션 영화에서 1초 동안의 움직임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촬영과 동시에 이미지가 필름이나 테입에 기록되는 시간인 1초와 동일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1초를 만들려면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제작 기법에 따라 몇 일 동안 작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반적으로 필름 카메라로 라이브액션 영화를 만들면 1초당 24프레임이 자동적으로 기록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는 24프레임 보다 적은 숫자의 프레임 - 흔히 리미티드 프레임(limited frame)이라고 불리우는 - 을 일일히 하나씩 만들어낸다. 즉,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의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상상력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노만 랙라렌은 "애니메이션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틈'에서 움직임이 창조되므로 이 틈이 바로 애니메이션의 뼈이자 살이며 피이다."라고 한 것이다.

19세기 말, 오늘날 라이브액션 영화의 출발점이 된 뤼미에르 형제와 에디슨의 활동사진에서 '무한한 상상력'이나 '일루전'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B.C 1만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우리나라 선조(1552∼1608) 목릉의 주작도 등을 보면 그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바로 죽어있는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애니메이션의 출발인 것이다.

에밀 레이노(Emile Reynaud)의 <광학극장>(Theatre Optique)

실제로 역사상 최초로 스크린에 투사된 움직이는 영상은 활동사진이 아닌 프랑스의 에밀 레이노가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다. 그의 <맛있는 한 잔의 맥주>(1888) 등과 같은 작품은 일일이 한 프레임 단위로 만들어졌으며, 그의 작품들은 파리의 그레벵 박물관에서 <광학극장>(Theatre Optique)이라는 이름으로 장기간 대중 앞에서 상영되었다.

그런데 라이브액션 영화에 비해서 제작 기간도 훨씬 길고, 제작비용도 노동력도 상대적으로 훨씬 많이 드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이러한 고생스러운 작업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세계 도처에서 '폐인'처럼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조지 오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날카로운 정치 풍자 애니메이션 <동물농장>을 만들었고, 국내에서는 2003년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을 통해서 회고전이 열렸던 영국 애니메이션의 거장 존 할라스 감독의 말을 음미해보자.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실사 영화의 역할이라면, 애니메이션 영화는 형이상학적 실존과 관계된다. 즉, 애니메이션 영화는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2004. 4. / 전북일보 전주영화제 특별판